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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격렬한 침묵-앙코르와트 - 무진당 조정육

계방산방 2008. 6. 16.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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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격렬한 침묵-앙코르와트



무진당 조정육




“저기가...앙코르와트...맞지요?”


밤새 거의 잠을 못자고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호텔을 벗어나 앙코르와트에 도착했을 때 나는 말을 더듬었다. 눈 앞에 800년 전의 역사가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원 달러! 원 달러!’를 외치며 아이들이 집요하게 들러붙었다. 손에는 엽서가 들려 있었다. 나오면서 사겠다는 말로 간신히 물리치고 드디어 앙코르와트의 사원으로 들어가는 다리 위에 섰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한 발 한 발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앙코르왓은 비슈누신의 화신으로 신봉되었던 수리야바르만 2세(1113-1145년 재위)때 창건되었다. 신전을 짓는 37년 동안 2만 5천 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앙코르 북부에 있는 사원 쁘레아 칸의 건설에 노예들은 매일, 백성들은 한 달에 일주일간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앙코르왓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사원의 크기는 해자까지 포함하여 길이가 동서로 1.5km, 남북으로 1.3km에 이른다. 대단히 큰 사원이다. 다른 사원과 달리 정문이 서쪽으로 나 있다. 비슈누신이 우주의 서쪽을 관장하는 신이기 때문이라는 설과 서쪽이 죽은 자의 영역이라서 장례식을 치르던 장소라는 설 등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사원으로 들어가는 다리는 그 길이가 250m에 폭이 12m로 제법 큰 규모이다. 다리 중간 지점에 십자형으로 만든 공간이 있어 사원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가다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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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 양편에는 물의 신인 ‘나가(코브라)상’이 조각되어 있다. '나가'는 원래 물에 사는 뱀인데 용의 형상에 뱀의 몸을 하고 있다. 물론 상상의 동물이다. 나가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무지개의 상징으로 숭배를 받는다. 캄보디아가 농사를 짓는 곳이기 때문에 물의 신이 중요했을 것이다.

 나가는 불교에서도 등장한다. 흉포하고 사나운 나가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는 순간 자신의 거대한 코프라의 두건을 우산처럼 활짝 펴서 위대한 성자의 머리를 보호해준 것이다. 이로써 나가는 암흑세계를 빠져 나와 팔부신중이 된다. 호법룡이 된 것이다. 이 호법용이 중국에 도착했을 때는 황제가 곧 용이라는 사상과 맞물려 제왕의 영예까지 얻는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는 우리 고유의 ‘미르’신앙과 어우러져 용왕신이 된다. 코브라가 마음 한 번 잘 써서 호법룡이 되더니 제왕이 되고 용왕신이 된 것이다. 인도땅에서 한반도까지 코브라가 순례하면서 변모되는 양상을 지켜보는 것도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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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코르왓이 무엇을 위한 장소였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분분하다. 영묘였는지 왕궁이었는지 혹은 사원이었는지 아직까지도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앙코르왓 북쪽에는 왕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자취가 남아 있지 않다. 사원은 전형적인 힌두교 신전양식을 따르고 있다. 원래 중앙 사당에는 석조로 된 비슈누신 입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분실되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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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 신전은 평면이 보통 정방형으로 설계된다. 힌두교를 만든 인도인들이 세계를 정방형의 도형으로 시각화했던 데서 유래된 것이다. 힌두교의 우주관은, 우주의 중심에 메루(수미)산이 있고 산맥이 우주를 둘러싸고 있다. 산맥바깥에는 다시 한없이 넓은 해자가 놓여 있다.

이런 교리가 건축으로 나타날 때 메루산은 탑으로, 산맥은 성벽으로 표현되며 해자는 물로 채워진다. 그러나 해자는 단순히 물을 채워놓는 곳이 아니다. 고해의 바다이다. 고해의 바다를 건너는 동안 마음속에 담긴 불만과 증오심과 죄악을 버려야 한다. 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순결하고 깨끗하게 해야 한다.

 

불교도들이 불상을 만드는 데 주력하는 동안 힌두교도들은 신전을 지었다. 따라서 ‘신의 집’이라는 뜻의 힌두교 신전은 힌두교도들이 신에게 바치는 가장 중요한 봉헌물이고 예술품이다. 힌두교 미술의 절정은 조각에서가 아니라 신전 건축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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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왓의 동서남북에는 고푸라(문)가 있는데 정문이 있는 서쪽에는 다섯 개의 고푸라가 있다. 중앙문은 왕만이 출입할 수 있었고 귀족이나 승려 등은 옆문을 이용해야 했다. 수레나 코끼리가 다닐 수 있는 문은 양쪽 끝에 있다.

정문의 외부 성벽은 그 길이가 230m로 라테라이트(홍토)로 되어 있었다. 이 성벽을 지나 성안에 들어서면 350m길이의 중앙 도로가 중앙 회랑으로 연결된다. 사원은 피라미드의 탑과 회랑으로 나눌 수 있다. 피라미드는 세 개의 층으로 설계되어 있는데 각 층은 회랑으로 둘러 싸여 있고 최정상에는 다섯 개의 탑이 조성되어 있다.


각 회랑의 벽면에는 8개의 주제로 나뉘어 부조가 조각되어 있다. 동쪽 벽면은 생명과 천지창조를 의미하는 내용이, 서쪽에는 죽음과 절망 등의 전투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북쪽은 신들의 이야기가, 남쪽에는 왕의 행진 장면과 천국과 지옥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1,500명이 넘는 여신과 압사라들이 벽감에서 요염한 자태를 드러낸다. 높은 곳에 위치한 압사라들은 온전한 모습이지만 사람의 눈높이에 서 있는 여신들은 젖가슴 부분이 시커멓다. 여자인 나도 만지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데 짓궂은 남자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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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는 인도의 민족 종교이다. 파괴의 신 시바와 번영과 유지(維持)의 신 비슈누, 그리고 창조의 신 브라흐마를 숭배한다. 이 외에도 파르바티(시바의 배우자. 우마 혹은 칼리, 두르가 등의 다른 이름이 있음), 락슈미(비슈누의 배우자, 길상의 여신), 사라스바티(브라흐마의 배우자. 학문과 지혜의 여신) 등이 제3의 숭배대상으로 예배의 대상이다. 

힌두교의 신들은 매우 인간적이다. 완전한 신이 불완전한 인간처럼 배우자가 있다는 것부터가 인간적이다. 신들은 서로 도와주기도 하지만 질투도 하고 싸움도 한다.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처럼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다. 신화에는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바램이 들어 있듯이 힌두교의 신전에는 갖가지 인간적인 신물이 모셔진다. 대표적으로 시바의 상징인 링가는 남근을 단순화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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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남자와 함께 가는 사람이 마누란지 애인인지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알아요?”


2006년에 앙코르왓을 찾는 한국인 방문객이 30만명을 넘어 방문객 순위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곳곳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이곳이 다른 나라가 아니라 마치 설악산이나 지리산쯤 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회랑을 따라 걷다 지쳐 난간에 기대어 앉아 있는데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도착하더니 바닥에 덜썩 주저앉으며 주고 받는 얘기였다.


“남자가 처마 밑에 서 있으면서 여자한테 우산 사오라고 하면 마누라고, 젖지 말라고 자기 옷까지 벗어준 다음 우산 사러 가면 애인이야.”

“그럼 여자가 졸면서 남자 어깨에 기댈 때는?”

“애인이 기대면, 피곤할 텐데 내 어깨에 기대서 눈 좀 붙여!라고 말하고, 마누라같으면, 어깨에 피 안통하니까 머리 치우라고 하는 거지 뭐.”     


오십대 후반쯤 되어 보였을까. 이렇게 신성한 장소에 와서 할 수 있는 얘기가 기껏 마누라와 애인의 감별법이다. 어쩌면 이곳에 살았던 800년 전의 사람들 또한 저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치고 박고 싸우고 빼앗고 배신하며 죽이고 부활하는 힌두교의 신들처럼 그들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것이 사람 사람 모습이고 신이 사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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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떻게 이 막막한 들판에 이다지도 거대한 건축물을 세울 생각을 했을까. 앙코르와트의 모델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에 있는 보로부두르 사원이 아니었을까. 앙코르 왕조를 세운 자야바르만 2세가 자바에서 풀려나기 전에 봤던 사원이 모델이 되었을 것이다. 앙코르의 두 번째 왕인 인드라바르만 1세(877년-886)가 인도의 큰 도성과 자바의 보로부두르 사원같은 신전을 건설하고자 했던 것도 그런 가설을 뒷받침해준다. 물론 보로부두르 사원은 불교 사원이다. 그러나 힌두교 신전처럼 지어진 불교사원이다. 자바의 샤일렌드라 왕조에서 불교사원을 지으면서 힌두교 사원을 참고했듯이 앙코르왕조도 힌두교 사원을 지으면서 불교사원을 모델로 한 것이다. 동남아시아 미술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다음 번에는 꼭 보로부두르 사원을 가서 확인해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남아시아의 최대의 힌두교 사원인 앙코르왓. 그런데 나올 때쯤 왠지 허전했다. 마치 매미 허물처럼 속이 텅 비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엄청난 규모의 돌덩어리가 놓여 있는데도 그것은 마차 말라빠진 미이라같고 마른 장작같았다. 신전을 지으며 채워넣었을 금은보화는 도굴당했고 각 방에 놓여졌던 신상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져있기 때문일까. 형체는 있으나 알맹이가 빠진 듯한 허전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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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나라는 세상의 그 어떤 나라도 가질 수 없는 위대한 문화유산을 물려받았다. 네가 그 분들의 후손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런 사원을 지을 수 있었던 너희 조상들은 정말 위대한 분들이다. 그 위대성을 되찾는 날, 앙코르는 다시 예전과 같은 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사원을 벗어날 무렵, 나는 곁에 있는 가이드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가이드가 대뜸 사원 계단을 손으로 가리키며 한다는 얘기가 황당했다.

“계단이 너무 가파라서 올라다닐 수가 없을 정도이다. 사람들이 가끔씩 굴러 떨어질 때도 있다. 왜 이렇게 좁게 만들었는 지 모르겠다.”


그렇게 설명하는 가이드의 표정에서 자랑스러움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외부인의 눈에는 그 위대성만이 보이는데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불평만이 보일 뿐이다. 가이드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아무런 자원이 없는 상태에서 대한민국은 경제규모 12위를 기록했다.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 끼어서도 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독자적인 우리 문화를 지키며 살고 있다. 이 정도라면 우리 스스로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될 수준이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들은 우리의 위대성을 잊을 때가 많다. 한국 사람은 이래서 안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외국인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다.


가이드의 불평을 듣고 보니 사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폭이 매우 좁고 가파랐다. 65m나 되는 사원이 마치 탑처럼 급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오르내릴 때 몸을 옆으로 돌리고 조심스럽게 내려와야만 한다. 계단을 가파르게 만들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원은 놀러가는 장소가 아니다. 기도하러 가는 성소이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당연히 몸을 구부리고 조심스러워해야 한다.

모든 계단이 다 가파른 것은 아니다. 왕이 오르내리는 중앙 계단은 경사도 완만할 뿐만 아니라 계단폭도 널찍하다. 왕은 곧 신이기 때문이다. 신의 대리자이고 사후에는 자신이 모신 신에게 귀의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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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었다. 귀한 것을 손에 쥐고서 귀한 줄 모르는 사람들. 그래서 그렇게 허전해 보였는 지 모른다. 올 해 서른 살이라는 가이드는 아주 과묵한 사람이었다. 그저 길만 안내할 뿐이었다. 자신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이국인 여행객에게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자하는 열정이 전혀 없었다. 물론 영어 발음이 워낙 특이해서 말을 해도 영어가 짧은 내가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그를 쳐다보며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런 위대한 문화를 이룰 수 있는 민족이 그리 많지 않다. 이 곳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자부심을 갖고 그 위대함을 자랑해라. 그리고 너 또한 그런 위대한 민족의 후손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그 말을 하면서 괜히 내 스스로가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어떠한가. 우리 민족은 어떠한가. 우리 또한 위대한 민족의 후손이지 않은가. 세계를 이끌어나갈 사상은 대한민국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과연 나는 그런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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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을 둘러보고 다시 해자를 건너려는데 원숭이 한 마리가 난간 틈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이 곳 더위는 정말 살인적이었다. 태어나서 이런 더위는 처음이었다. 사원을 구경하는 동안 패트병에 담긴 물을 4병이나 마셨지만 화장실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계속 목이 말랐다. 더위는 캄보디아의 특산물이라더니 정말이었다. 더구나 4월은 1년 중에서 가장 덥다고 했다. 마치 불가마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몸에서는 연신 땀이 흘러내렸다.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마다 수건으로 손바닥의 땀을 닦아내야만 했다. 오늘 온도가 몇 도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45도 정도 될 거라고 했다. 이런 온도에서도 사람의 생존이 가능하다니. 불가사의한 더위에 불가사의한 생존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상쾌했다. 불쾌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는데도 끈적거림이 없었다. 거리로 내몰린 에어컨 바람과 매연이 뒤범벅된 도시의 거리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까실까실한 더위였다. 더위의 본질은 불쾌함이 아니었다.

 앙코르와트에 와서 비로소 더위의 순수함을 만난 것 같았다. 순결한 더위가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다. 아름다운 것은 꽃과 사원뿐만이 아니었다. 더위든 바람이든 자신의 본질이 아닌 것에 오염되지 않고 순결함을 지킬 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잘 생겼건 못생겼건 사람으로서의 본질이 투명하게 드러날 때 그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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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지역의 사원들에 쓰인 라테라이트와 사암은 모두 성스러운 산 프놈 꿀렌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이 말은 앙코르와트에서 40km떨어진 곳에서 돌을 가져왔다는 뜻이다. 상상해보라. 푹푹 찌는 열대의 폭염 속에서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꼬끼리떼의 행렬을. 등에 거대한 돌덩어리를 실은 꼬끼리의 행렬 곁에는 노역을 하느라 굶주리고 시커멓게 그을린 노예들이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노예들과 백성들이 돌덩어리를 옮기면서 죽어갔을까. 사원조각은 오로지 손으로 깎고 다듬었다고 한다. 강력한 왕국을 건설하겠다는 신왕을 위해 동원된 노예들은 돌을 깨고 돌을 다듬다 돌 속에 뼈를 묻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왕들도 그들을 원망하고 죽어간 사람들과 함께 한 줌 먼지로 사라졌다. 권력을 쥐었던 영혼과 권력때문에 죽었던 영혼 모두 우주를 떠다니고 있을 뿐이다. 남은 것은 오직 격렬한 침묵뿐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 그렇다. 모든 것이 덧없다. 전성기 때는 100만명의 인구가 살았다는 앙코르가 아닌가. 지는 석양을 뒤로 하고 앙코르왓을 나오면서 나는 계속 ‘제행무상’을 중얼거렸다. 모든 것은 영원한 것이 없나니 무상하구나. 그 무상함 속에서 무상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한 생을 살아가는 동안 꼭 해결해야 될 과제가 있다면 무상하지 않는 것을 찾는 것이다. 나는 그걸 찾을 수 있을까.

 


 

 

 

 

 

출처 : 금강(金剛) 불교입문에서 성불까지
글쓴이 : 윤거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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