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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9탄, 노보에서 2년 유학... 그리고 남은 러시아 단상(2)
계방산방
2006. 2. 22. 14:47
그러면, 한국인은?
물론, 한국인은 여기서도 그 중간을 지키고 있다. 사실, 난 개인적으로 중국인에 대한 아무 꺼리낌이 없다. 다만, 이곳 사람들의 인식 때문에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한번도 일본인을 부러워하진 않았다. 외국에 가면 애국자 된다고, 난 벌써 투철한 애국자가 되어 버렸나 보다. 그러면, 이제 시베리아만의 얘기를 해볼까 한다. 시베리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 겨울이다. 나 또한 겨울을 걱정하며 이곳에 왔다.
2번을 지낸 겨울에 대한 나의 느낌은...
글쎄.. 한 마디로 참 추웠다. 이곳 겨울은 정말 춥고도, 길다. 근 6개월 가까이 되는 겨울. 겨울 내내 햇빛이 내리쬐는 날은 아주 드물다. 늘 흐리다. 눈은 산더미처럼 쌓여 사람들이 늘 다니는 길이 아니고는 다른 길로는 갈 수도 없다. 그래도, 그 길도 푹푹 빠지며 걸어야하고, 계속 움츠리고 다녀서 집에 돌아오면 목과 어깨가 아프다. 게다가 길을 얼마나 미끄러운지.. 첫 겨울엔 시도 때도 없이 넘어지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런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 시베리아의 겨울 옷과 신발, 그리고 모자는 특별하다. 옷과 모자는 털과 가죽으로 되어 있다. 옷은 발끝까지 내려와 정말 무겁다. 털로 된 모자는 크고, 어떤 것은 귀까지 푹 덮는다. 이 털옷을 입고 귀까지 덮는 큰 털모자까지 쓴 뒷모습은 영락없는 동물이다. 신발은 안에 털이 들어있으며, 밑창은 골이 깊다던가 고무로 되어있어 미끄럽지 않다. 정말 따뜻한 것들이지만 너무 무거운데다가 집을 한번 나서기 위해 이것들을 다 차려 입으려면 그 또한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와 반대로 이곳 사람들은 신발부터 신는다. 왜냐하면, 그 두껍고 무거운 옷을 입고 신발을 신기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문가 벽엔 옷걸이가 만들어져있다. 또한, 이런 겨울 옷 때문인지 쇼핑센터나 상점이 아니고는, 음식점, 학교, 도서관, 연구소, 박물관, 극장 등 모든 건물마다 입구엔 옷을 맡기는 곳이 있다. 겉옷을 벗고 들어가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 이렇게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 한다. 그러나 의외로 겨울에 감기는 잘 걸리지 않는다. 이런 준비 때문이기도 하지만, 너무 추우면 감기균도 죽는단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와 같이 거센 바람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바람이 없는 날은 온도가 아무리 낮아도 참을 만 하지만, 바람이 센 날에는 집을 나가자마자 코가 붙고, 조금 더 가면 눈도 붙는다. 눈만 빼고는 목도리로 다 칭칭 감고 다니다 보면 어느 새 다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그런 서로의 모습을 보고 웃은 적도 여러번이다. 그런데, 이런 짓(?)은 외국인만 한다. 이들은 아무리 추워도 얼굴을 잘 가리지 않는다.
마스크라도 사용하면 좋으련만, 이곳에선 마스크를 쓰면 전염병 환자인줄 안단다. 한번은 친구가 마스크를 썼다가 길 가는 내내 웃음거리가 된 적도 있다.
그런데, 이런 추위만 있다면 정말 살수 없을 것이다.
이 추위를 견디며 나에게 정말 위로가 된 것은 사방을 둘러 싼 설경의 아름다움이다. 그 깨끗함이다.
나는 수시로 생각했다. 겨울에 이 눈이 없었다면, 겨울은 정말이지 그저 사람들에게 환대받는 삭막한 계절로만 남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눈은 겨울을 아름답게 한다. 그리고 눈은 추운 겨울이어야만 볼수 있다. 나는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또 보며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감탄했다.
한창의 추위가 꺾이고 나면, 햇빛 나는 날이 많다. 아침에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기위해 커튼을 젖힐 때면, '와~!'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햇빛에 반짝이는 눈은 꼭 보석 같다. 그리고, 밤새 내린 눈이 검은 나무에 수북히 덮여 그 가지의 윤곽만 드러내는 것이 정말 바로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옆엔 하얀 자작나무위에 쌓인 눈도 너무 눈부시다. 또 나무 끝엔 파란 하늘이 배경이 되어 그림은 더욱 완벽해진다. 난 아직도 햇빛이 내리쬐던 겨울날을 잊을 수가 없다. 나 혼자만이 이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보는 것이 너무 아까워 사진이라도 찍어 두고 싶었으나, 그것이 안돼, 급하게 글로 풍경을 묘사해 사람들에게 이 메일을 마구 보냈던 것이 기억난다. 또, 처음에 와서 정말 신기했던 것은, 검은 옷에 떨어진 눈을 보면, 전엔 책에서나 보던 눈의 결정체를 이곳에선 수많은 예쁜 모양들을 직접 볼 수 있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 겨울에 이곳 사람들은 어린 아이를 유모차 대신 썰매에 태워 다닌다. 엄마는 앞에 가고 저만치 떨어져 썰매에 실려가는 아이들을 보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대부분 아이가 엄마 쪽을 쳐다보고 있지만, 가끔 어떤 아이들은 엄마를 등지고 있다. 그러면, 그 아이는 뒤에 오는 사람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어 그 큰 눈이 더 동그래진다. 이곳 노보시비르스크의 아카뎀 가라독만의 특징일 수 있는 것 한가지가 있다.
연말이 되면, 쇼핑센터라 말할 수 있는 대형 상점 앞에 새해맞이를 위해 대형 트리가 세워진다. 그리고 그 트리가 서 있는 길은 페쇄되고, 그 곳엔 눈을 쌓아 크고 작은 미끄럼틀을 만들어 놓는다. 낮이고 밤이고 아이들은 신나게 썰매를 탄다. 우리는 새해 때마다 썰매를 탔다. 12월 31일 저녁에 모여 맛있는 것을 먹고 놀다가 12시가 되면 밖으로 나간다. 썰매를 타기 위해. 그러면, 닦치는 대로 나무조각이며 상자조각들을 집어 들고는 미끄럼틀 위로 올라가서는 바로 미끄러진다. 처음엔 점잖이 앉아 타다가 나중엔 엎드리고 눕고 정말 가관이다. 밤이라 체면 안 차리고 신나게 한 1시간을 타며 재밌게 놀다가 들어온다. 그러면, 가시지 않는 추위로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죽을 지경이다. 추위로 나중엔 고생을 했지만, 그 추억은 너무 귀하게 남았다.
누구나 시베리아의 겨울을 얘기하면, '거기서 어떻게 사니? 그런 추위에서 어떻게 견디니?' 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나 또한 어떻게 견딜지 막막했다. 그러나, 이런 풍경의 아름다움과 겨울에만 경험할 수 있는 재미들이 무서운 추위를 견디게하는 힘이 되어주는 게 아닐까 한다.
함승은(비카, 노어과)
2001/09/13 (23:14)
경향신문 박창훈 기자 러시아 가다 에서~ 박창훈 (ruccki@hanmail.net)
물론, 한국인은 여기서도 그 중간을 지키고 있다. 사실, 난 개인적으로 중국인에 대한 아무 꺼리낌이 없다. 다만, 이곳 사람들의 인식 때문에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한번도 일본인을 부러워하진 않았다. 외국에 가면 애국자 된다고, 난 벌써 투철한 애국자가 되어 버렸나 보다. 그러면, 이제 시베리아만의 얘기를 해볼까 한다. 시베리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 겨울이다. 나 또한 겨울을 걱정하며 이곳에 왔다.
2번을 지낸 겨울에 대한 나의 느낌은...
글쎄.. 한 마디로 참 추웠다. 이곳 겨울은 정말 춥고도, 길다. 근 6개월 가까이 되는 겨울. 겨울 내내 햇빛이 내리쬐는 날은 아주 드물다. 늘 흐리다. 눈은 산더미처럼 쌓여 사람들이 늘 다니는 길이 아니고는 다른 길로는 갈 수도 없다. 그래도, 그 길도 푹푹 빠지며 걸어야하고, 계속 움츠리고 다녀서 집에 돌아오면 목과 어깨가 아프다. 게다가 길을 얼마나 미끄러운지.. 첫 겨울엔 시도 때도 없이 넘어지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런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 시베리아의 겨울 옷과 신발, 그리고 모자는 특별하다. 옷과 모자는 털과 가죽으로 되어 있다. 옷은 발끝까지 내려와 정말 무겁다. 털로 된 모자는 크고, 어떤 것은 귀까지 푹 덮는다. 이 털옷을 입고 귀까지 덮는 큰 털모자까지 쓴 뒷모습은 영락없는 동물이다. 신발은 안에 털이 들어있으며, 밑창은 골이 깊다던가 고무로 되어있어 미끄럽지 않다. 정말 따뜻한 것들이지만 너무 무거운데다가 집을 한번 나서기 위해 이것들을 다 차려 입으려면 그 또한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와 반대로 이곳 사람들은 신발부터 신는다. 왜냐하면, 그 두껍고 무거운 옷을 입고 신발을 신기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문가 벽엔 옷걸이가 만들어져있다. 또한, 이런 겨울 옷 때문인지 쇼핑센터나 상점이 아니고는, 음식점, 학교, 도서관, 연구소, 박물관, 극장 등 모든 건물마다 입구엔 옷을 맡기는 곳이 있다. 겉옷을 벗고 들어가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 이렇게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 한다. 그러나 의외로 겨울에 감기는 잘 걸리지 않는다. 이런 준비 때문이기도 하지만, 너무 추우면 감기균도 죽는단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와 같이 거센 바람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바람이 없는 날은 온도가 아무리 낮아도 참을 만 하지만, 바람이 센 날에는 집을 나가자마자 코가 붙고, 조금 더 가면 눈도 붙는다. 눈만 빼고는 목도리로 다 칭칭 감고 다니다 보면 어느 새 다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그런 서로의 모습을 보고 웃은 적도 여러번이다. 그런데, 이런 짓(?)은 외국인만 한다. 이들은 아무리 추워도 얼굴을 잘 가리지 않는다.
마스크라도 사용하면 좋으련만, 이곳에선 마스크를 쓰면 전염병 환자인줄 안단다. 한번은 친구가 마스크를 썼다가 길 가는 내내 웃음거리가 된 적도 있다.
그런데, 이런 추위만 있다면 정말 살수 없을 것이다.
이 추위를 견디며 나에게 정말 위로가 된 것은 사방을 둘러 싼 설경의 아름다움이다. 그 깨끗함이다.
나는 수시로 생각했다. 겨울에 이 눈이 없었다면, 겨울은 정말이지 그저 사람들에게 환대받는 삭막한 계절로만 남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눈은 겨울을 아름답게 한다. 그리고 눈은 추운 겨울이어야만 볼수 있다. 나는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또 보며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에 감탄했다.
한창의 추위가 꺾이고 나면, 햇빛 나는 날이 많다. 아침에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기위해 커튼을 젖힐 때면, '와~!'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햇빛에 반짝이는 눈은 꼭 보석 같다. 그리고, 밤새 내린 눈이 검은 나무에 수북히 덮여 그 가지의 윤곽만 드러내는 것이 정말 바로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옆엔 하얀 자작나무위에 쌓인 눈도 너무 눈부시다. 또 나무 끝엔 파란 하늘이 배경이 되어 그림은 더욱 완벽해진다. 난 아직도 햇빛이 내리쬐던 겨울날을 잊을 수가 없다. 나 혼자만이 이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보는 것이 너무 아까워 사진이라도 찍어 두고 싶었으나, 그것이 안돼, 급하게 글로 풍경을 묘사해 사람들에게 이 메일을 마구 보냈던 것이 기억난다. 또, 처음에 와서 정말 신기했던 것은, 검은 옷에 떨어진 눈을 보면, 전엔 책에서나 보던 눈의 결정체를 이곳에선 수많은 예쁜 모양들을 직접 볼 수 있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 겨울에 이곳 사람들은 어린 아이를 유모차 대신 썰매에 태워 다닌다. 엄마는 앞에 가고 저만치 떨어져 썰매에 실려가는 아이들을 보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대부분 아이가 엄마 쪽을 쳐다보고 있지만, 가끔 어떤 아이들은 엄마를 등지고 있다. 그러면, 그 아이는 뒤에 오는 사람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어 그 큰 눈이 더 동그래진다. 이곳 노보시비르스크의 아카뎀 가라독만의 특징일 수 있는 것 한가지가 있다.
연말이 되면, 쇼핑센터라 말할 수 있는 대형 상점 앞에 새해맞이를 위해 대형 트리가 세워진다. 그리고 그 트리가 서 있는 길은 페쇄되고, 그 곳엔 눈을 쌓아 크고 작은 미끄럼틀을 만들어 놓는다. 낮이고 밤이고 아이들은 신나게 썰매를 탄다. 우리는 새해 때마다 썰매를 탔다. 12월 31일 저녁에 모여 맛있는 것을 먹고 놀다가 12시가 되면 밖으로 나간다. 썰매를 타기 위해. 그러면, 닦치는 대로 나무조각이며 상자조각들을 집어 들고는 미끄럼틀 위로 올라가서는 바로 미끄러진다. 처음엔 점잖이 앉아 타다가 나중엔 엎드리고 눕고 정말 가관이다. 밤이라 체면 안 차리고 신나게 한 1시간을 타며 재밌게 놀다가 들어온다. 그러면, 가시지 않는 추위로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죽을 지경이다. 추위로 나중엔 고생을 했지만, 그 추억은 너무 귀하게 남았다.
누구나 시베리아의 겨울을 얘기하면, '거기서 어떻게 사니? 그런 추위에서 어떻게 견디니?' 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나 또한 어떻게 견딜지 막막했다. 그러나, 이런 풍경의 아름다움과 겨울에만 경험할 수 있는 재미들이 무서운 추위를 견디게하는 힘이 되어주는 게 아닐까 한다.
함승은(비카, 노어과)
2001/09/13 (23:14)
경향신문 박창훈 기자 러시아 가다 에서~ 박창훈 (ruccki@hanmail.net)
출처 : 한 어울림
글쓴이 : 먹구렁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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