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선생 혼불 기행
일시 : 2006. 2. 24
장소 : 혼불 문학관
소재지 : 전북 남원시 사매면
우연히 혼불이라는 대하 소설을 접하게 되어 읽다가 작품에 매료되어 작가의 셈세함과 다박함에 매료
되어 몇일 밤 새워 10권의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깊은 감동이 온몸을 휘감고 돌며 아쉽고 놓친 부분들을
다시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읍니다. 지금껏 읽지 못하고 있지만....
그런데 뜻하지 않게 혼불 소설의 배경지를 방문하게 되어 가슴이 설레왔읍니다.
이곳은 혼불 문학관 관리실입니다. 이곳의 위치는 전북 남원군 사내면 서도리 노봉마을. 전주에서
남원내려오는 국도를 따라 내려오다가 의견의 고장 오수를 지나 조금 더가면 혼불 문학관이란
팻말의 안내를 받으며 오면 된답니다.
이 건물은 혼불 문학관입니다. 노적봉에서 흘러나오는 산 마루금으로 둘러쌓여 아늑한 곳에 자리
잡았더군요. 마치 경상도 하동땅 토지의 배경지가 되는 최참판댁의 집터와 같이 매우 아늑하고
좋은 집터라고 생각이 들었읍니다.
혼불 문학관 입구입니다.
들어서자마자 최명희 작가님의 사진이 보입니다.
최명희님은 1947년에 태어나 1998년 51세로 돌아가셨답니다.
부친의 고향이 이곳이고 최명희님은 전주에서 태어나 기전여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주 영생
대학(현 전주대학교)에 입학하며 대학 신문사 일에 적극 참여하였답니다. 전북대학교국문과로
1968년 편입하였읍니다. 중앙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쓰러지는 빛' 으로 등단하였으며 불후의
명작 '혼불'을 17년 만에 완성했다 합니다.
최명희 님의 우리말 사랑은 얼마나 지극했는지 모른답니다. 이 글중에서 그 정신이 베어있지요.
' 나는 원고를 쓸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
날렵한 끌이나 기능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져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생애를 기울여 한마디 한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모금을
그자리에 고이게 할 수 만 있다면...
그리하여 우리의 정신의 기둥하나 세울 수 있다면........'
이글을 읽고 나는내 살아가는 데 노력이 부족하였음에 부끄러워 했어야 했읍니다.
너무 강한 정신이 글 구절 구절 흘러 베어있었읍니다.
또한 글쓰기가 얼마나 힘들고 혼불을 쓰기 시작하면서 얼마나 혼신의 열정을 다하여 썼는지
이 글에 나타나 있더군요.
' 쓰지않고 사는 사람으 얼마나 좋을까? 때때로 나는 엎드려 울었다.
그리고 갚을 길도 없는 큰빚을 지고 도망다니는 사람처럼 항상 불안하고 외로웠다.
좀처럼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모아놓은 자료만 어지럽게 쌓아둔 채
핑게만 잇으면 안써보려고 일부러 한눈을 팔던 처음과는 달리
거의 안타까운 마음으로 쓰기 시작한 이야기 "혼불"은 드디어
나도 어쩌지 못할 불길로 나를 사로 잡았다. '
저도 그 열정으로 내 삶을 살고 싶은 마음에 그 불길이 번져왔읍니다.
이장면은 효원의 전통 혼례식 장면입니다.
새암바위는 최명희 님이 손가락으로 바위를 둟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하였듯 온갖 정성으로 쓴 "혼불'이 이 새암을 이루어 모국어의 바다, 위로와 해원의 바다가 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담은 문학관 옆 바위를 새암바위라 한답니다.
문학관 앞으로 보이는 탁 트인 넓은 들판은 종가집 청암부인의 들녁입니다.
문학관 앞 뜰에 있는 연못입니다.
청호 저수지와 앞에 보이는 동산이 달맞이 동산이랍니다.
청호저수지는 청암부인이 노적봉과 벼슬봉의 산자락 기맥을 가두기 위해 큰 못을 파고 그
갇힌 기운이 찰랑찰랑 넘치게 하면 백대 천손의 천추락 만세향을 누릴 만 한곳이라 하여 2년
동안 만든 저수지입니다.
달맛이 동산은 아직 아무도 보지 않은 새 달을 맨 먼저 보면서 간절한 소망을 기원하면 소원
성취 한다는 곳입니다.
많은 이야기와 양반과 서민과 쌍놈이 한데 어울어져 살아가는 삶의 애환이 숨겨저 있는곳에 서서히
해 그림자가 길어지면서 벼슬봉 사이로 빛을 감추려 합니다.
이제 또다시 많은 생각을 놔두고 또 다른 여정길을 떠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