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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자료

계방산방 2006. 5. 13. 23:50
만리장성 | 여행이야기 2006/05/1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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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위로운 만리장성

만리장성은 풍부한 문화적 함의를 가진 세계 유산이기도 하고 또한 독특한 자연경관이기도 합니다. 만리장성은 중국의 관광객은 물론이고 중국을 관광하는 외국관광객들도 거의 빼놓지 않는 코스이고 중국관광하면 모두들 만리장성부터 머리에 떠올립니다. 

팔달령 장성의 야경

 

만리장성의 기원과 용도,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 더욱 상세하게 소개하면,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한 2천여 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만리장성은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전 중국의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에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만리장성은 세계적으로 건설기한이 가장 길고 공정량이 가장 큰 고대 방어공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기원전 221년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이 각 제후국들의 장성을 연결하면서 만리장성이 시작되었고 후에 한(漢)나라 때에 이르러 장성의 길이가 최고 만여 ㎞나 되었으며 세월이 흐르면서 각 조대의 장성이 무너져 현재 완전하게 보전되고 있는 장성은 700여 년전의 명(明)나라때 쌓은 장성입니다.

지금도 장성의 길이는 7천여 ㎞나 됩니다. 만리장성의 용도는 북방으로부터의 침략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그렇게 긴 장성을 쌓았는가 하는데 대해서도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 중 민간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로는 맹강녀(孟姜女)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혼중이던 남편이 만리장성 공사장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아 그 남편을 찾아 장성까지 찾아가서 통곡하자 남편의 해골이 묻혔던 장성 한 귀퉁이가 무너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맹강녀가 울어 무너뜨린 장성 구간

만리장성의 동쪽끝인 산해관에 가면 맹강녀의 묘도 있습니다. 누가 이렇게 위대한 공정을 만들었는가 하는데 대해 장성에 대한 연구와 보호에 종사해온 중국장성학회 동요회(董耀會)비서장은 주로 세 부분의 사람들이 만리장성의 주요 노동력이었다고 했습니다.

장성은 국가의 행위이기 때문에 가장 주요한 인력은 군대였고 두번째는 민간에서 징집한 노동자들이고 세번째는 국경에 유배된 범죄자들이었다고 했습니다.

 

 

맹강녀의 남편은 두번째 인력에 속했습니다. 그 때는 지금처럼 선진적인 건설기계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거의 모든 것을 인력으로 해야 하니까 장성건설에 필요한 인력의 수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산을 깎아 장성을 쌓은 것이 아니라 산세를 따라 쌓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장성의 기능이 침략자로부터의 방어이기 때문에 산도 높은 산에 쌓았고 평야에서도 험준한 곳을 찾아 쌓았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장성의 구간마다 연대와 전망대를 쌓았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지키는 장병들은 높고 튼튼한 장성에 의지해 침략군을 반격하고 장성을 지키는 소부대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많은 침략군이 쳐들어오면 연대에 불을 피워 멀리 후방의 지원군을 불렀습니다.

얼마나 많은 전역들이 이 만리장성의 기슭에서 벌어졌는지 상상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만리장성은 군사방어시설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문화유적으로만 남아 많은 국내외 관광객을 끌고 있습니다. 

수천킬로미터의 만리장성구간에서 베이징지역의 장성이 가장 웅위롭고 가장 험준하고 가장 튼튼합니다. 왜냐하면 이 구간의 장성이 수도와 황실을 보위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팔달령 장성

베이징 북부의 산맥에 위치한 장성을 말하는데, 팔달령(八達嶺) 장성, 모전욕(募田) 장성, 사마대(司馬臺) 장성으로 분류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장성구간은 사통팔달한다고 해서 이름지어진 팔달령 장성입니다. 이 구간은 특별히 튼튼하고 보전도 잘 되고 또 해발도 높아서 높은 장성에 오르는 가장 좋은 명소입니다. 이 곳의 장성은 산세를 따라 쌓아 높낮이가 다른데 거대한 화강암으로 기초를 만들고 평균높이는 약 8미터나 됩니다. 또 성에는 200미터에 하나씩 전망대도 만들었습니다.

팔달령의 장성 정상에 올라가면 불도장성 비호한(不到長城非好漢) 이라는 중국 모택동(毛澤東)주석의 글도 있습니다. 불도장성 비호한, 장성에 오르지 않으면 사나이라 할 수 없다는 그 말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장성에 올랐습니다. 

외국의 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22살된 프랑스 처녀 이렌나는 벌써 여러 차례나 팔달령 장성을 올랐다고 하면서 처음 장성에 올랐을 때의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렌나는 처음 장성에 올라 연연한 산맥이 구불구불 뻗어가고 그 푸름속에 용처럼 드러누운 장성을 보고 너무 감탄했다고 하면서 그 높은 장성을 힘들게 한 계단씩 밟으며 올라가서 본 경관이 너무 아름다웠다고 했습니다.

땀을 흘리며 숨이 턱에 닿아 올라가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발 아래 장성을 내려다 보는 그 느낌,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느낌은 팔달령 장성만이 아니라 모전욕 장성과 사마대 장성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팔달령 장성의 동쪽에 위치한 모전욕 장성에는 성루 세 개가 나란이 있어서 유명합니다. 그리고 수풀이 특히 무성하고 봄이면 붉은 복숭아꽃과 흰 배꽃이 녹음속에 모습을 보여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베이징 구간의 장성은 이렇게 각자의 특색을 가지는데, 사마대 장성은 산세가 특히 가파로운 것이 특징입니다. 마치 칼날에 장성을 쌓은 것과 같다고들 표현합니다. 

그리고 두 산 사이에 위치한 웅위롭고 장관인 거용관(居庸關) 장성, 물가에 지어져 수려한 황화성(黃花城)장성도 각자의 특색을 자랑합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웅위롭고 풍부한 내적 함의를 가진 장성입니다. 이 장성은 2천년의 중국 사회변화를 보아온 역사의 견증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장성은 중화민족의 중추이고 장성은 중화민족의 민족정신을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마대 장성

한 대만 관광객은 자신은 장성을 볼 때마다 중국인으로서의 자호감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그는 장성은 민족의 정신을 대표하고 중국인의 지혜를 대표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머나먼 과거에 만든 것을 보고 그 과거의 것이 그렇게 웅장하게 지금도 지구표면에 남아 있는것을 보면 자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장성은 중화문명의 이정표이기도 하고 세계인에 속하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장성은 한번 보는것으로 끝나는 관광지가 아닙니다. 장성은 보고 또 보아도 새로워지는 깊은 함의의 문화명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