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생각들

감자밭에서 가을단상

계방산방 2006. 10. 11. 10:42

 

추석도 끝났다.

모처럼 여유있는 추석연휴라 마음도 여유롭게 추석을 지낼 수 있었으며 또한 술 한잔도 여유있게

즐길 수 있었던 추석이었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첫 출근날은 바쁘게 지나갔다.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 했으며, 나머지 4/4분기 마무리 잘하기위해 머리를 짜야했고

다음해의 업무를 구상해야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햇빛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오후

마냥 게으를 수 없어 가까운 가을 감자 심어놓은 감자밭에 가 보았다.

감자 꽃이 활짝피어 맞이해 준다. 휘엉청 밝은 한가위 달 만큼이나 환한 감자꽃이었다.

우선 건강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으니 마음이 꽉차오름을 느낀다.

고맙다... 감자야......

 

 

모여산다는 것은 어쩌면 행복일 수 있다.

감자들이 밭 가득 모여 자신을 뽐내고 있다. 서로 잘 자랄려고 다투고 있음이 눈에보인다.

' 그래 서로 경쟁하거라, 그리고 모두 건강하게 잘자라거라' 이렇듯 건강한 모습을 보면 보는 것

만으로도 즐거운 마음이 든다...

 

자식도 마찮가지이다. 건강하게 자라면 그 자체가 아름답다. 보는 것 만으로도 즐거움이 있고 가슴가득

히 행복이 찾아온다. 건강함 속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베어있다. 그 아름다움이 가장 아름다울 것이다.

 

파란 하늘에 시원한 바람이 산들 불어온다. 꽃이 흔들리고 잎이 흔들리고 줄기가 흔들리면서

운동을 하고 있다. 허리운동, 발목운동, 손운동, 목운동, 숨고르기 운동....그 운동 사이로 신선한 공기가

흐른다. 감자의 땀을 식혀주며 청량한 자연의 기를 전해준다.

이 운동을 통해서 감자는 튼튼해지고 뼈대가 굵어지고, 감자가 굵어진다.

농부의 마음이 살찌고 있다.

 

 

가을햇빛의 따사로움이 내리쬐고 있다.

작물은 그 따사로움을 즐기고 있다. 어느덧 감자에 따사롭고 나른한 한낮의 권태가 찾아온다.

잎이 조금씩 쳐지기 시작한다. 팔다리 축 늘어뜨려 마냥 게으름 속으로 빠져든다. 잠시 오수(午垂)에

빠져든다.... 허허... 고놈들...낮잠을 자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사랑스럽기만 하다....

 

 

하늘은 프르기만 하다. 구름 한점 없다.

감자밭 옆친구 무우는 하늘을 뻔히 쳐다본다. 그리고 한숨을 내쉰다.

목말라 죽겠는데.. 하늘을 원망하는 눈치다.

 

그래 8월 말 태풍 끝으로 한달 반 내내 비 한방울 오지 않아 물 한 모금 먹지 못했다.

커야할 키가 크지못하고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다..

내가 목이 말라 오기 시작한다.. 그래 비야... 조금만 내려줘라.... 속으로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저 귀엽고 사랑스러운 놈들이 많은 갈증을 느끼고 있으니 내몸도 바싹 타들어 감을 느낀다.

 

 

가을의 중간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천연의 햇빛을 받고 자란 상치가 너무 곱고 튼튼하게 자라고 있다.

무 공해다...자연그대로이다..

한웅큼 싼 상치 쌈에서 농부의 기력이 회생한다....

 

 

이제 고추도 청춘을 다하고 마지막 뒷수확만 남기고 잎이 바래져 가고 있다.

일생를 열심히 살고 난 흔적이 포기 포기사이로 보인다. 고단했지만 값진 삶이었다.

마지막 빨간 색으로 생을 불태우고 있다... 열심히 살아줘서 고맙다.. 고추야...

 

 

들풀과 어울려 거칠게 살아온 호박이 보인다.

농부를 사랑하는 만큼이나 둥글고 예쁜모양을 만들고 자라고 있다.

누가 저 거친 잎과 줄기에서  또 야생 풀밭 속에서 저렇게 예쁜 열매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상상이나

했겠는가...저 아름다운 열매는 농부의 마음을 둥글게 만들고 하염없이 선량하게 만들고

욕심을 다 흡수해 가서 둥근 호박 속으로 감추어 버렸다..이때 만큼은 농부도 신선이 된다..

자람... 그자체는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예술품이지 않고 무었이겠는가.....

 

 

추석도 지나고 이제 당분간 찾지않을 것만 같은  배추가 아랑곳하지 않고 김장을 위해 포기가 영글어

가고 있다. 속이 차가고 있는 중이다.. 누가 보아 주지도 않아도 차분히 자기 임무를 묵묵히 해가는

저 배추는 어쩌면 자기의 속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속을 채워주고 있는 것일 것이다.

 

 

조금 있으면 속이 꽉차겠지... 꽉찬 속을 다른사람이 볼까봐  농부는 짚푸라기로 꼭꼭 묶어줄 것이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던가. 꽉찬 속을 보지 못하게 배추를 묶어주는 농부의 마음은 이와 같은

마음일 것이리라.. 농부의 지혜가 예사롭지 않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님들은 낮추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이름을 지을 때도 너무 좋은 이름이면 남들이

시기할까 봐 못난이 이름을 지어놓고 아침새벽 천지신명님께 정한수 떠놓고 얼마나 빌었던가.

낯추면서 속이차고 고개를 숙이는 것이 진정으로 여무는 일이지 않겠는가..

배추와 농부는 부모님과 자식이되어 선조들의 지혜를 그대로 실행하고 있다...

하염없이 낮추고  속을 보이지 않으며 꽉 참을....

 

 

감자밭 한자락 얻어 편안히 누워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님

그 주위에 단감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모두가 열심히 가을을 보내고 있다.

지금 순간에는 태어남도 죽음도 같이 존재하며 한 시간속에서 머무르고 있다..

 

 

이제 가야할 시간이다.

활짝핀 감자꽃이 고개를 높이들고 모듬발하여 헤어짐을 안사한다..

잘있어라.. 잘가세요...

내마음 속에 감자꽃이 활짝피어 풍요로움을 가득앉고 돌아왔다..

간절히 비가 오기를 하늘에 빌고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