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신의 도시에서 신의 무덤으로 - 따프롬과 앙코르 톰① 무진당 조정육 “또 돌덩어리 보러 가요?”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있을 때였다. 옆 좌석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몇몇 사람들을 앉혀 놓고 가이더가 오늘 일정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 말을 듣던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하신 말씀이었다. 나 또한 그 할머니와 같은 심정이었다. 연 이틀 돌만 봤더니 사흘째가 되자 이젠 쉬고 싶었다. 앙코르에서 볼 수 있는 유적은 거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빡빡한 일정에 맞춰 차분히 감상할 여유도 없이 계속 돌산 사이를 걸어다니다보면 나중에는 만사가 다 귀찮아진다. 이 때가 여행에서 가장 큰 고비다. 더구나 그 더위 속을 뚫고 돌아다녀야 하다니. 솔직히 겁이 났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운 좋으면 따프롬 같은 장소를 갈 수 있을지 어떻게 아는가.
나는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식당을 나왔다. 오늘도 시작해볼까. 식당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헉,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더웠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지치지 않고 다닐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격려하며 거의 전투적인 자세로 걸어오는데 1층 수영장 의자에 누워 한가롭게 휴가를 즐기는 외국인들이 보였다. 그들은 진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부러웠다.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수영하면서 쉴 수 있는 그들이 진짜 부러웠다. 물론 호텔 수영장은 호텔 투숙객들한테는 공짜였다. 그러나 나는 수영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비행기 값이 얼마인데 이 곳까지 와서 수영으로 하루를 보낸단 말인가. 본전 생각 나서라도 쉴 수가 없었다. 이렇게 대한민국 아줌마는 오늘도 실적 위주로 하루를 보낼 것이다. |
오늘 볼 사원은 ‘앙코르톰’이다. 그 중에서도 바이욘사원은 ‘앙코르의 미소’라고 불릴 정도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곳이다. 이 사원은 크메르 왕 중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불리우는 자야바르만7세(1181년-1220년 재위)때 건설되었다. 앙코르와트를 건설한 수리야바르만 2세의 사후 앙코르는 심한 혼란에 빠져 들었다. 국내에서는 반란으로 왕이 살해되었고 그 틈을 타고 침입한 참파족에 의해 앙코르는 약탈당했다. 이런 혼란을 뚫고 앙코르를 구원한 왕이 자야바르만7세였다. 50세가 넘어서야 왕이 된 그는 반란 세력들을 잠재우고 주변 국가들을 평정하여 크메르의 영토를 넓혔다. 점령지와 연결된 여행객들의 휴식처를 121개를 건립했고 도로망을 정비했으며 병원은 자그만치 102개나 세웠다. 그 중에서도 왕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세운 건물이 사원이었다. ‘거대한 성벽도시’라는 뜻의 ‘앙코르톰’을 건설한 후 중앙에 위대한 사원의 산 바이욘을 세웠는데 외적의 공격이나 반란으로부터 왕국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처음 바이욘 사원은 힌두교 사원으로 설계되었지만 중간에 불교 사원으로 개축되었고 나중에는 힌두교와 불교가 뒤섞인 종합적인 종교 사원으로 바뀌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200여개의 얼굴로 구성된 52기의 인면탑(人面塔)의 주인공이 관음보살이라는 주장과 신왕(데바라자) 또는 시바신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그런 다양한 관측이 가능할 만큼 인면탑은 신비스럽다. |
자이바르만7세
자야바르만7세는 불교도였는데 왕과 붓다를 일체화하는 신왕신앙에 따라 사원이 건립되었다. 최근의 연구결과는 탑의 주인공들이 데바타(여신), 데바(남신), 아수라인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언제든지 번복될 수 있는 학설이긴 하지만.
이틀 동안 빌린 차가 도로 중간에서 주저앉는 바람에 오늘은 톡톡이를 탔다.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톡톡이는 앙코르에서 가장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 다만 언제든지 떨어질 수 있다는 위험과 먼지와 매연을 뒤집어써야 된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울창한 열대 우림 사이를 톡톡이를 타고 가며 나는 어제 갔던 따프롬을 생각했다.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영화 “툼 레이더”의 촬영지로 유명한 따프롬에 갔을 때 마치 무슨 괴기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따프롬 역시 자야바르만7세가 건립한 사원이다. 어머니에게 바치기 위해 건립된 따프롬에는 260개가 넘는 신상들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허물어진 사원과 거대한 문어발같은 나무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오랫동안 방치된 사원의 돌틈 사이로 사원 위를 날아다니던 새의 배설물 속에 담긴 씨앗이 떨어져 싹이 튼다. 바윗덩어리 사이를 뚫고 수분을 찾아 흙 쪽으로 뻗어나간 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굵어져서 나중에는 쐐기처럼 돌덩어리를 벌려놓아 결국 사원은 나무 뿌리가 집어삼키게 된다. |
따프롬
사원은 마치 산소호흡기를 쓰고 누워 있는 뇌사상태의 중환자 같았다. 의식불명상태의 뇌사자 몸 속 마디마디에 문어발 같은 촉수를 드리우고 피를 빨아 먹고 있는 나무뿌리는 SF영화에 나오는 우주 괴물같았다.
결국 사원은 나무뿌리 때문에 파괴되고 붕괴되었다. 그런데 돌 틈을 파고 든 나무뿌리가 얼마나 단단히 돌을 옭아매고 있던지 사원은 더 이상 파괴되지 않았다. 나무뿌리 때문에 파괴되었고 나무뿌리 때문에 파괴되지 않는 이 기막힌 역설. 너 때문에 못살겠어, 라고 돌아서고 나면 그래도 너 때문에 여지껏 살아왔구나, 하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애증의 변증법. 결국 사랑한단 말은 미워한다는 말의 다른 말이고, 미워한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의 반어법이 아닌가. 빛과 어둠이,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그리고 동전의 양면이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이 한 몸인 것처럼 삶은 언제나 야누스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돌아가면 말해야겠다. 내가 미워했다고 생각하여 독설을 퍼부었던 사람에게 말해야겠다. 실은 내가 당신을 무척 사랑했었노라고.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망쳐졌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의미가 있었노라고. |
따프롬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어느 새 앙코르 톰의 남문에 도착했다. 인구 백만을 수용할 수 있는 도시를 건설하고자 설계된 앙코르 톰은 한 변이 3km되는 정사각으로 면적은 약 900헥타에 이른다. 동서남북에 성문이 있는데 모두 중심축에 있는 바이욘으로 모이게 설계되어 있다. 동문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승리의 문’이라 불리우는 다섯 번째 성문이 있다. 각 성문 앞에는 폭이 100m, 수심 6m의 해자를 파고 악어들을 살게 하여 적의 침입을 막았다. |
앙코르톰 남문 전경
수미산을 상징하는 바이욘을 중심축으로 각 성문에는 ‘우유의 바다젓기’가 연출된다. ‘유해교반(乳海攪拌)이라고도 불리우는 우유의 바다젓기는 힌두교 신화를 조형화한 것이다. ’우유의 바다는 물론 ‘젖의 바다’로도 해석되는데 내용은 이러하다. 신들의 왕인 인드라가 시바신의 분신을 경멸하여 저주를 받아 힘을 잃게 되자 세계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이 틈을 타서 마신들이 활개를 치자 신들은 창조의 신 브라흐마에게 찾아가 구원을 요청한다. 이에 브라흐마는 지친 신들을 이끌고 비슈누신에게 찾아간다. 세상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화신으로 나타나 세계를 구제하는 신답게 비슈누신은 해답을 내놓는다. 그것이 바로 ‘우유의 바다젓기’다. 우유의 바다를 휘저어 그 곳에서 나온 불사의 감로주 ‘암리타’를 마시라는 것이다. 신들도 죽음을 걱정하는가. 힌두교의 신들은 참 인간적이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유가 담긴 곳이 강이 아니라 바다라는 것이다. 웬만한 힘으로는 감히 그 넓은 바다를 저을 수 없었다. 이에 신들은 악마와 힘을 합쳐 바다를 함께 젓기로 합의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악마인가. 그것은 악마와 신들이 형제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같고 어머니만 달랐던 것이다. 또한 극과 극은 통한다는 뜻이고 빛과 어두움처럼 불사약은 어느 한 쪽만으로는 얻을 수 없다는 뜻일 수도 있을 것이다. |
우유의 바다젓기 신들
신들의 모습
아무튼 비슈누신의 지휘아래 54명의 신과 54명의 악마가 힘을 합쳐 바다를 젓기 시작했다. 먼저 인드라신의 독수리인 가루다가 만다라산을 바다에 옮겨 주었다. 커다란 뱀은 산을 둘둘 감싸고 악마는 머리부분을, 신들은 꼬리부분을 잡고 휘저었다. 왜 뱀(나가)이 신전마다 등장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인 순간에 아낌없이 몸을 바쳐 힘을 썼기 때문이다. 이 때 만다라산이 바다에 가라앉으려고 하자 비슈누신은 거북이가 되어 산을 등 위에 올려놓고 스스로 젓대막대의 중심축이 되었다. 이렇게 천년을 휘저었다고 한다. 이 때 신과 악마가 뱀의 몸을 너무 세게 잡아당겨서 뱀의 입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나중에 용이 되는 뱀이 적과 싸울 때면 입에서 불을 뿜는 습관이 이런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 뒤 암리타를 얻기까지의 과정과 얻고 나서 암리타를 서로 차지하려는 신들과 악마의 싸움 등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많이 있지만 생략하기로 하자. |
악신들의 모습
아무튼 수많은 신과 악마가 대들보처럼 굵은 뱀의 몸통을 잡고 똑같은 자세로 서 있는 우유의 바다젓기 신화는 신전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의 다리에 난간처럼 조성되어 캄보디아의 상징처럼 배치되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원형을 앙코르 톰의 남쪽 성문 앞에서 볼 수 있다.
해자를 건너는 다리 양편에 뱀의 몸을 잡고 줄다리기하듯 서 있는 신들과 악마의 모습은 우유의 바다젓기의 신화를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다. 다리의 왼편에는 선신들이, 오른편에는 악신들이 서 있다. 널찍한 얼굴에 탑형 모자를 쓴 신들의 모습은 늠름하고 위엄 있어 보인다. 반면 오른쪽에 위치한 악마의 모습은 무섭다거나 기괴하다는 느낌 대신 조금 우스꽝스럽고 둔해보인다. 그러나 이런 구분조차 무의미할 것이다. 신이나 악마 모두 본질은 같으면서 필요에 의해 각각의 모습으로 나투신 비슈누신이 아니신가. 안타까운 것은 무거운 조각상을 들고 갈 수 없었던 미술품 수집가들에 의해 신과 악마의 얼굴들이 거의 다 잘려 나갔다는 사실이다. 오로지 돈과 자기 만족을 위해 문화재 훼손도 서슴치않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야말로 악마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안쪽에서 바라본 남문
목이 잘려 나간 채로 여전히 우유의 바다를 젓고 있는 신들을 뒤로 하고 한참을 달리자 바이욘 사원이 나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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